인터넷에서 멍청한 소리를 열심히 지껄이는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 나름대로 '교육을 통해 정립해야 할 필수적인 사고방식 4가지'를 찾아냈다.

1. 과학적 방법론
2. 비례의 원칙/정량적 사고
3. 사회구조적 판단
4. 대인논증 배제

솔직히 위의 네 가지만 잘 정립을 하고 있어도, 개소리에 속거나 개소리를 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다고 생각한다.




 1번이아 '과학'이 붙은 학문 한다는 인간이면 당연히 갖춰야 되는거니 넘어가더라도, 내 눈에는 의외로 2번과 3번이 취약한 사람이 많은 듯 보인다. 고학력자(라고 꼭 사고력이 높진 않지만)로 갈 수록 4번은 확연히 줄어드는데, 인문계열은 2번이 취약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달까? 당연히 반대급부로 이공계열은 3번이 취약한 사람이 굉장히 많고. 뭐 각자가 공부하는 전공과목의 특수성이기야 하겠지만, 구조적판단에 무지한 것은 끽해야 현상의 원인을 개인에게 몰빵하는 피상적 접근을 할 뿐인데 비해, 정량적 사고가 누락된 경우는 아예 결론들을 잘못 내셔서 좀 안타까울때가 많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혹시 '마시면 젊어지는 샘물'이라는 옛이야기를 들어보셨나 모르겠는데,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어느 날 영감이 젊어지는 샘물을 마시고 청년이 되어 돌아오자, 할멈도 젊어지려 샘물을 마시러 갔다. 하지만 과욕을 부려서 샘물을 너무 많이 마신 나머지, 갓난아기가 되었다는 설화. 이를 근거로 '샘물은 좋은거지만, 많이 마시면 안된다'는 것들은 잘 도출을 하시는데, 이걸 똑같이 입으로 들어가는 식품분야로 가져오면 전혀 적용을 못하시더라고.




 MSG가 됐건, 소금이 됐건, 가습기살균제 성분인 CMIT가 됐건, 청산가리가 됐던 간에 기본적인 논리는 위의 샘물 얘기와 다를바가 없다. '얼마나 먹어야 해로운 효과가 나타나는가'를 판단해야지, 그 자체를 두고 해롭다/이롭다는 정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불가하다. 샘물을 먹고 영감이 젊어졌으니 '좋은 것'이고, 샘물을 먹고 할멈이 갓난아기가 되어버렸으니 '나쁜 것'이면 도대체 샘물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결국 '몇ml 당 몇 살 젊어진다'를 기준으로 샘물을 그 이상 먹으면 해롭다는 기준점을 만들 뿐이지, 샘물 자체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웃긴 얘기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CMIT도 '먹였을 때 실험군의 50%가 죽는 양'(=LD50)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지, 정량적 판단을 배제하고 치약에 있다/없다로 위험도를 따지는 것은 곤란하고.




 교육과정 설계하시는 분들이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자연스레 녹여냈기야 하겠지만, 차라리 과목이라도 따로 빼서 빡세게 가르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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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무라 히데아키가 쓴 <관저의 100시간>을 읽었다. 이 책은 2011년에 일본을 강타했던 도호쿠 대지진과, 그로 인해 발생했던 후쿠시마 원전 사태 초기의 정부대응 100시간을 <아사히신문>의 기자가 정리한 르포로, 머리말에서 저자가 힘주어 말하듯 “논평과 추측은 배재했다. 나는 오로지 팩트로 말하겠다.”에 지극히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시간대별로 총리 관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어떤 조치를 취했었는지를 관계자들의 증언과 남아있는 자료들을 토대로 꼼꼼하고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당시 총리였던 간 나오토의 증언까지 확보할 정도로 취재에 열을 올렸고, 그 많은 내용을 지루하지 않게 잘 풀어 내놨다. 서평을 어떻게 쓸까 좀 고민을 했었는데,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대목 몇 개를 추려서 간단히 옮겨 적어볼까 한다.
 
 
 원자력안전 총괄책임자가 비전공자
 
 
 한국 관료체계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본 관료체계는 확실히 이런 점에서 좀 막장성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원자력 안전 관련 책임관청은 경제산업성 산하 원자력안전•보안원인데, 후쿠시마 원전 사태 당시의 보안원장은 데라사카 노부아키(寺坂信昭)였다.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의 교류전원 완전 상실 사태가 일어난 직후, 일본정부 차원의 위기관리센터가 꾸려졌었다. 원자력 안전 관련 최고책임자인 보안원장 데라사카도 당연히 여기에 참여했는데, 문제는 이 양반이 사무계 출신 인사였던 것. 당시 일본 총리였던 간 나오토는 도쿄공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소위 초엘리트 이공계 출신이었는데, 원전 사태 초기에 데라사카 원장에게 현재 원전의 상태가 어떤지를 물어보자 당연히 보안원장은 우물쭈물하기만 했다. 빡친 총리가 “자네 기술에 대해 알고 말하는 건가?”라고 물었고, 데라사카는 “제가 경제학부 출신이라서······ 그래도 기본적인 내용은 알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라고 답했다. 보좌관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이후에 보안원장과 총리가 따로 면담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함.
 
 

 개인적으로 여기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안전감독 관련 최고책임자가 비전공자였다는 점이다. 재난 상황에서 내각 수반인 총리에 대한 기술적 조언을 책임져야 할 자리가 보안원장인데, 관례적으로 보안원장 자리를 사무계와 기술계가 돌아가면서 맡았었단다. 뭐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한다. 근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본인의 전공을 떠나서 관리감독 기관의 대표란 인간이 초기 사태파악도 제대로 못 한 상태로 ‘제가 경제학부 출신이라…’ 따위의 어이없는 변명을 했다는 거다. 이 사건 이후에 데라사카는 총리관저를 떠났고, 대신 기술계 출신의 인사를 관저에 파견했다. 그런데 종국에는 기술계 출신 차장도 총리를 만족시키지 못해서 관저를 나섰고, 원자력안전•보안원이 아니라 같은 경제산업성 산하의 자원에너지청 부장을 대신 파견 보내는 촌극을 연출했다. 사고대응 요직에 실제로 기술적·정책적 조언을 해 줄 전문가가 없었던 셈이다.
 
 
 정부 내의 정보유통 부재와 현장 정보의 수집능력 부족
 
 
 이게 사실 제일 어이가 없었던 부분인데, 원전사고 당시 일본의 문부과학성은 ‘긴급 시 신속 방사능 영향 예측 네트워크 시스템(SPEEDI)’이라는 것을 이미 운용을 하고 있었다. SPEEDI를 이용하면 방사능 물질이 유출된 지점, 풍향, 풍속 등을 고려해서 방사능 물질이 도달될 지점 등을 예측하고, 그를 토대로 최소한의 지역에서 신속하게 재난대피가 가능했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당시에도 분석이 계속 이루어졌었고, 그 내용은 경제산업성 산하 원자력안전•보안원으로도 당연히 전달이 됐었다. 문제는 보안원에서는 이를 정부에 제공하지 않았고, 정부가 꾸린 재난본부에서는 SPEEDI라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도 모른 상태로, 단순히 원전 반경 동심원 몇 km로 대피하라는 식의 대처를 했었다. 당시 원전 관련 재난본부를 총괄하던 간 총리는, 실각 이후 저자가 인터뷰 과정에서 이 얘기를 꺼내자 ‘그런 것이 있었습니까?’ 정도의 반응을 보여주며 격노했다고. 저자가 당시 보안원장이던 데라사카를 인터뷰하며 이를 따져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가관이다. “문부과학성은 도대체 뭘 했습니까?” 이런 식의 정부 내 정보 유통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진짜 총체적 난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의 건은 차라리 정부 내의 소통 문제지,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현장의 상태를 제대로 전달 받지를 못한 것. 아무런 기능을 못하고 있던 보안원을 대신해서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대신 투입이 되었는데, 보안원이 보관하고 있어야 할 ‘원전 도면’이 재난본부에 없었다. 정말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보니, 순전히 이 양반의 원전 구조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서 현장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조치를 결정하는 식으로 문제에 대응했다고. 더군다나 현장에서 제대로 정보가 수급이 되지 않아서, 총리관저는 후쿠시마 제1 원전 1호기의 외곽 건물이 폭발하는 사고를 TV뉴스를 보고서야 접했다. 더군다나 현장에서는 위험하다는 판단 하에 냉각수로 해수를 투입하기 시작했는데, 관저에는 이 사실이 전달되지 않아 ‘해수투입을 하라’는 결정을 투입을 시작한지 1시간 후에야 현장으로 내려 보냈다고 한다. 시스템의 실패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
 
 
 막장기업 도쿄전력
 
 
 그리고 뭣보다, 원전 사태가 저 지경으로 흘러간 것에는 도쿄전력의 막장 짓이 꽤나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사태 초기, 후쿠시마 원전의 가동이 힘들어지자 전력부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도쿄전력에서 ‘일시 정전 실시’ 공문이 관저로 통보됐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놀랐던 점이 있는데, 관저에서는 해당 조치로 인해 ‘자택 내 요양환자’가 사망 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서 도쿄전력에 정전을 유예 해줄 것을 요청한다. 가정용 인공호흡기라던가 산소 농축기 등을 자가에서 사용하고 있는 경우, 전력공급 중단으로 인해 환자가 사망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관저는 도쿄전력 부사장을 소환해, ‘큰 거래처들에 양해를 구해서 환자에게 통보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정전을 늦춰 달라’고 요청을 한다. 근데 부사장이란 놈이 하는 말이 예술이다. “대형 고객부터 살펴야죠. 그런 부탁을 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정전계획이 늦춰지긴 했는데, 참 읽으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근데 이것보다 더 심각한 건 따로 있다. 후쿠시마 제1 원전의 상황이 악화되자, 도쿄전력에서는 총리관저로 전화를 걸어 ‘원전에서 직원들을 철수하겠다.’는 소리를 한다. 철수한단 말은 거의 원전을 포기하겠다는 말이고, 이 소식을 들은 총리는 격분해서, 통합재난본부를 도쿄전력 본사에 설치하는 초 강경책을 편다. 근데 결국 도쿄전력은 현장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직원들까지 후쿠시마 제 2원전으로 철수시켰고, 제 1원전에는 냉각작업을 수행하는 최소인력만 남게 됐다.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공기업이었으면 좀 나았을까란 생각도 든다만, 보안원도 저 꼴인데 여기라고 달랐을 것 같지는 않다.
 
 
 맺으며
 
 
 이런 것 말고도, 책에는 참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웃긴 상황이 많이 담겨있다. 원전 관련 재난상황 시, 현장에서 방재업무를 담당하도록 규정되어있는 센터 건물에 방사능필터가 설치되지 않아서 정작 그 건물을 이용을 못했다던가, 관저 내에서 원전문제 관련 대응만을 위해서 선정한 임시 사무실에 통신차단이 걸려있어서 휴대전화로 정보를 전달받으려면 관저 밖으로 나갔어야 된다거나 하는 등 ‘시스템의 일본’이라는 말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희한한 난관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일본 관료들은 재난 상황에도 매뉴얼대로·원칙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했고, 답답할 정도로 법적 근거 확인에 집착을 했다. 처음에는 미친놈들인가 싶었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저게 맞는 것 아닌가. 재난 상황에서도 저 정도라면, 평소에는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일 처리를 할지가 보여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점들보다 더 대단하다고 느껴졌던 건, 이 책이 실제로 나올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재난 당시의 최고책임자이던 간 나오토 총리는 물론 다양한 관련 분야의 사람들이 기명이든 익명이든 적극적으로 저자의 인터뷰에 응했었다. 그리고 저자는 이걸 19장짜리 주석에 빼곡하게 기록했다. 중요한 발언마다 출처를 꼭 명시했고, 정보원의 안위가 위험한 경우에는 익명으로 적었지만 ‘도쿄전력 측에서 반론할 경우 정보원을 명시하는 동시에 그가 취재에 응한 경위 등을 밝힐 용의가 있다’ 따위의 말을 빼곡하게 덧붙여뒀다. 기자가 작심하고 파면 이렇게 되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달까. 개인적으로 그보다 더 감명 깊었던 건, 저자 본인의 성향을 맺음말에서야 드러냈다는 점이다. 저자는 분명 ‘탈핵’을 주장하는 입장에 서있는 것 같은데, 나는 책 읽으면서 저자의 성향을 극후반부에 가서야 약간이나마 읽어냈다. 정말 칼을 갈고, 사실만 담담히 서술한 책이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보시길 권한다. 개인적 평점은 ★★★★☆. 저자의 맺음말 일부를 아래에 옮기고,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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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히 이 사상 초유의 대재앙의 전모를 개인과 일개 조직의 검증만으로 밝혀낼 수도 없거니와, 그 검증 작업을 그들에게 위임할 수도 없다. 다양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과 조직이 다양한 각도와 관점에서 검증하고, 그것이 상호 검증되어야 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고통스러운 재해였지만, 거기서 끄집어낼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후손에게 전해질 것이다. 이 책도 대응 초기 단계의 관저를 무대 삼아 정치인·관료·도쿄전력·전문가들의 대응을 검증한 작업에 불과하며, 기술적인 문제점과 과제, 내부 피폭과 초기 피폭 문제, 보도 방식, 후쿠시마 현청과 시정촌의 대응 등에 대한 검증은 생략되었다. 주민들의 수기와 증언을 엮는 작업도 사고 검증에 필수적이다. 이는 도저히 한 사람의 인간, 하나의 조직이 해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그래서 다양한 검증 작업이 다양한 입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당시 사고에 대응했던 자들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침묵은 죄다. 시간의 흐름에 팩트를 흘려버려서, 더는 검증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책임 방기와도 다름없다.
Posted by TheHSP





 바쁜 8월 중에 겨우 시간을 쪼개가며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를 읽었다. 저자 두 사람은 개발경제학 분야를 연구하는 MIT 교수로, 특히 개발도상국의 빈곤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낸 분들이라고 하는데 읽다보면 정말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치밀하게 써놓은 부분이 많이 보인다. 이 양반들이 개발경제학 분야에서 ‘무작위 대조실험’이란 것을 거의 최초로 도입해서 써먹은 모양인데, 이 부분은 솔직히 좀 의외였음. 경제학 쪽에 무지해서 뭐라 섣불리 판단하긴 뭣하지만, 자연과학에서는 굉장히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인 무작위 대조실험이 아니라면 기존에는 도대체 어떤 방법론을 갖고 연구를 했을지 궁금했다. 책에서는 그 강력한 방법론을 이용해서 특정 정책이 어떤 효과를 가져 오는지를 매우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책의 서두에서도 나오는 말이지만, 저자들은 ‘가난 극복’에 대해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말인 줄만 알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저 말이 절실한 부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저자들은 ‘빈곤의 덫’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입부에 꽤나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데, 특정 임계점을 넘지 못하면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 논증되는 순간부터 빈자의 삶이 지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일부는 외부에서 원조(aid)를 통해서 필요한 공급을 늘리면, 빈민들이 가난탈출의 임계점을 넘길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그런데 부패한 정부와 후진적인 정치제도, 그리고 구제 대상이라 할 수 있는 빈민들 자체가 그런 프로그램에 참여 할 의지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번번이 실패를 경험하고 있단다. 반대로 빈국 내에서의 시장질서 회복 및 제도적 개혁을 통해서 수요적 접근을 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역시 ‘시장 논리’에 의해서 번번이 좌절을 겪고 있다고 하니 도대체 뭐 어찌 하라는 건지 암울하기만 하달까. 
 
 



 저자들은 이에 대해서 나름의 해법을 내어놓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행동을 직접 이해하고, 그네들이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사고방식을 파악해서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해결해나가자는 거다. 거시적인 정치체제를 바꿔야 한다느니, 해외 원조란 것이 유용성에 대해서 거시적으로 논하는 것 보다는,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나아지게 할 수 있는 작은 정책들을 바꾸는 방향으로 큰 변화를 이끌어내자는 것이 저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책은 이러한 방향성에 맞춰서, 흔히들 우리가 생각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들(가령 이들이 무료 백신접종조차 하지 않는 이유라던가, 가난함에도 아이를 지나치게 많이 낳는 것, 또는 고리대금업자에게 엄청나게 높은 이율로 돈을 빌리는 이유 등)을 차근차근 해석하고, 그에 대한 여타의 해법들을 던져준다. 우리가 보기에는 정말 비합리적인 행동들도, 그네들 나름의 사정을 고려하면 의외로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들이랄까. 예컨대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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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나라를 방문해 도심에서 교외로 이동하다 보면 곳곳에서 미완성 상태로 있는 주택을 많이 볼 수 있다. 지붕 없이 네 벽만 있는 집, 지붕은 있는데 창문이 없는 집, 벽 한두 개만 세워놓은 집, 지붕 위로 기둥이 돌출된 집, 페인트칠을 하다 만 집 등 그 형태도 다양하다. 하지만 작업을 하는 시멘트공이나 벽돌공은 보이지 않는다. 대개는 여러 달 째 공사가 중단된 주택이다. 모로코 탕헤르 지역에 새로 생긴 마을은 이런 미완성 주택이 대부분이라 오히려 깔끔하게 완공된 집들이 눈에 띈다. 집주인에게 왜 집을 짓다 말았느냐고 물으면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이게 우리가 저축하는 방식이에요.“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폴로,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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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이 글을 읽고는, 빈민들이 왜 저런 일을 하는지 도통 이해가 안됐다. 한 번에 집을 지을 수 있도록 꼬박꼬박 예금을 모으거나, 그게 힘들다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완성된 주택의 형태로 짓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지 않은가. 저렇게 두면 집의 골조도 상할 수 있고, 돈을 더 모으지 못하면 통째로 ‘매몰비용’이 되는 끔직한 상황인데 말이다. 그런데 정말 이리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선택지마저도, 그 사람들 나름의 합리적인 선택지 중 하나였다. 만약 당신이 빈민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당장 집을 지을만한 여유자금은 없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당신이 내릴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는 책에서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다. 크크크...
 




 
 개인적 평가는 ★★★★★. 주변 지인들 중에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분이 계시다면 자비를 들여서라도 선물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책이다. 관심가는 분은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Posted by TheHSP